한글의 해외 전파를 생각해 본다 (신윤환) _클릭하면 원문으로 이동
......한국에서 출발하여 두세 번의 비행기, 낡아빠진 버스, 통통배 따위를 갈아타며 꼬박 이틀은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조그만 섬들에 흩어져 사는, 사용인구가 6-7만에 불과한 찌아찌아(Cia-Cia)어라고 불리는 말을 쓰는, 이 가난한 소수민족에게 한글이 소개된 데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실제로 작년부터 이번 일을 추진한 관계자들은 찌아찌아족이 모여사는 바우바우 시정부 관리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회사와 공장을 견학시키고, 수출과 관광객 유치의 길을 일깨워주고, 한국 문화센터의 건립을 넌지시 제안하였다고 한다. 한글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후에는 한국의 지방정부, 단체, 회사, 국민들로부터 학용품, 도서, 토속품, 전자제품 등 위문품과 각종 지원이 답지하고 있으며, 현지 주민들도 “잘사는 나라” 한국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돌아올 경제적 혜택과 기회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 부풀어 있다고 한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니꼴라스 담먼씨는 뉴욕타임즈와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찌아찌아족에게 퍼붓고 있는 물질적 지원이 근처의 다른 부족들에게 시기심과 경쟁심을 심어주게 되어 만약 이들도 일본, 인도, 러시아, 중국, 아랍인들까지 끌어 들이게 된다면, 폭력적인 종족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술라웨시 지역을 혼란을 몰아 넣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설사 종족분규 사태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국어인 인도네시아어가 표기되는 로마글자가 아닌 한글로 소수민족의 언어를 표기하도록 ‘부추기는’ 행위는 인도네시아인들, 특히 민족주의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반발을 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민족정체성과 국민적 자존심을 표상하는 문자를 금전으로 바꾸는 것으로 몰아 갈지도 모른다. 한 인도네시아인 블로거는 한글 채택 소식을 전한 한 지방신문을 인용한 뒤, “인도네시아 정부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또 인도네시아 국민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중략) 인도네시아 독립 만세!”라는 선동적인 문구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놓고 있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서 국어와 언어 정책은 정치와 직결된 민감한 문제이다. 언어는 통합의 추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분열과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동남아 신생국들이 독립하면서 어떤 국어를 채택했느냐에 따라 국민 분열과 통합의 다른 길로 나아갔다. 필리핀과 버마가 전자에 속하고 인도네시아가 후자에 속한다. 인도네시아는 다수민족인 자와족의 언어가 아닌 종족간 소통에 널리 쓰이던 말레이어를 모태로 만든 바하사(Bahasa) 인도네시아를 국어로 채택함으로써 국민통합을 앞당겼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는 국어인 바하사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고 소수민족의 언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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